[제1회 영화제 아래층 영화제] 기획 의도
세연 : 흔히 선정의 절차가 있는 지원 제도에서는 '올해는’ 탈락이라는 결과와 함께 ‘아쉽게도 함께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저 역시 허구한 날 기획안이 떨어지는데요. 너무 자주 떨어져서인지 붙을 거라는 희망을 잃은지도 조금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희망을 잃은 자리에는 자책이 들어섰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떨어질만했다”며 작성자인 제가 직접 기획안을 낭떠러지 아래로 밀어버립니다. 그렇게 제가 ‘실패’라고 도장 찍은 pdf 들도 아픔을 느꼈을까요? 갑자기 걱정스러워지네요. 운영진 분들은 탈락과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여왔나요? 아래층 영화제가 어떤 실패의 경험에서 출발했는지 궁금합니다. (물론 경험적으로 저도 예상되긴 합니다만)
다솜:(물론 사실이 아니지만) 약간 탈락했다는 것을 뭔가.. ‘이 이야기가 좀 가치가 없다’로 이해를 한 순간들이 많았어요. 선정되지 않았다는게 어쨌든 작품의 경중이 있다고 여겨지고, ‘아 내가 만든 작업이 지금 딱히 중요한 얘기는 아니라서 그런가 보다’ ‘시의성이 없는 이야기인가 보다’ 자책했던 게 가장 힘든 생각이었던 거 같아요. 탈락 자체가 힘들다기보다
현주:시의성 얘기를 그때 하셨던 기억이 나요.
다솜:안 된 이유를 찾고 싶은데, 시의성이 없는 게 이유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기 편하고. 그마저도 이유가 아니면 더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는 막막함이 생기니까.
현주 : 탈락이 약간 실패라고 생각하셨어요 ?
다솜:머리론 아니었지만, 좌절하긴 했어요. 대안을 떠올리기 힘들어서요. 개인적으로는 작업에 실패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실패’는 실패라고 생각조차 하기 어려운게 실패인 것 같거든요. 발화하거나 언어화하기 조차 어려운게 실패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면에서 어떤 작업을 한다는 면에서 과연 실패가 있을 수 있는 건가하는 의문이 있었어요.
현주:맞아요. 실패를 말하면, 그럼 성공은 모든 영화제에 붙고 상을 타고 그럼 성공인건가? 약간 그런 의문이 들었던 것 같아요. 저도 실패라고 생각을 안 했어요.
다솜:그래서 작업을 두고 외부적으로 성공과 실패를 말하는게 좀 어색하게 느껴지는데, 다만.. 탈락 이후 기분은 좋지 않음 (ㅋㅋㅋ)
현주:맞아요. 약간 속이 좀 허하죠. 일말의 기대를 하게 되잖아요.
다솜:아래층 영화제가 꼭 탈락에서만 출발했다기보다 좀 여러 이야기들이 결합돼서 이렇게 이어졌다고 생각이 드는데요. 일단 저희 둘 다 작업을 상영할 곳을 계속 찾아 헤매고 있었고, 그 다음에 영화제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좀 불법 상영이라든지, 어떤 재밌고, 대안적인 방법으로 상영을 할 순 없을지, 어딘가에 침투할 수 없을지 이런 고민을 나눴었죠. 그때 현주님이 레이킨스 몰 얘기를 꺼내시면서 좀 더 구체야 됐고요.
현주 : 저는 어쨌든 경쟁이나 이런게 너무 싫었어서 다큐멘터리 세계에선 그런게 좀 덜 하겠지, 얘기 나눌 수 있는 기회들이 있겠지라는 좀 이상적인 생각을 가지고 작업을 시작했는데요. 피칭이나 지원 사업도 내야 되고, 그 안에서도 경쟁을 해서 획득해야 하고, 결국에는 취업 준비와 유사한 형태가 되어 버리는 것 같다고 느껴졌어요. 이런 것에서 벗어나서 좀 재밌는 걸 하고 싶었어요. 내 작업이 더 잘 구성되어 있고, 시의성이 더 있고 이런 거를 경쟁하기보다는요. 씬이 재밌어야 다큐도 더 열심히 만들고 싶을 것 같은데, 그냥 이런 상황이 재미 없다고 느껴졌던게 저는 큰 것 같아요. 그때 마침 마음 맞는 사람끼리 모여서 불법적인 상영을 구상하다가 아래층 영화제까지 오게 됐다고 생각해요.
다솜:그리고 실패를 말하려면 시점이 있어야 되잖아요. 그게 되게 아이러니한 것 같거든요. 지금을 기준으로 어딘가에서 상영하지 못하고, 수상 받지 못한다고 이 작품이 완료가 되는 것은 아닌데. 저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과정일 수밖에 없어서 그 안에서의 성공과 실패는 일단 좀 어폐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탈락’이란 건 분명한 현상으로 있으니까 그건 좀 더 얘기해 볼 수 있겠다 싶었고요. 그리고 누구든 미선정되는 경험이 있을 수밖에 없고요. 이번엔 선정됐어도 다음은 또 기약하기 어렵잖아요. 그래서 모두의 고민이라고 생각했어요.
세연 : 지원 → 약간의 설렘 → 대기 → 미선정 메일 → 분노 그리고 태연 → 아이클라우드 폴더에서 동면 → 기억에서 삭제 혹은 제도가 원하는 방향으로 성형하여 재제출 → 탈락 혹은 선정
이러한 직선적인 프로세스가 꽤 익숙한 편입니다. 그리고 실패한 작업에 허락되는 미래도 어쩐지 비슷합니다. 부족한 점을 개선하고, 다시 도전하고, 마침내 (결국) 선정되는 미래 말이죠. 깊은 잠에 빠진 친구들은 어떻게 ‘실패는 성장의 어머니’라는 서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실패한 작업을 언젠가 성공할 작업의 재료로 만들지 않고도 그대로 마주할 수 있을까요?
현주:오늘 ‘마침 내 극장'에 선정 되셨잖아요.
다솜:아, 맞아요!
현주:기분이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다솜:저희가 아예 판을 만들어 버리는 상황에서 선정의 소식을 받게 된 거잖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그럼 아래층 영화제에서 못 틀게 되는 건가? 하는 불안감이 먼저 들었고요.(ㅋㅋ) 사실 ‘마침 내 극장’이 규격에서 벗어난 상영을 시도하는 곳이라 의미있다고 생각했고 기뻤어요. 물론, 저도 영화제 심사에 의존하는 것에 대해 문제 의식이 있었으니까, 계속해서 선정되기를 기다리는 것을 마냥 긍정적으로만 여기긴 어렵기도 했거든요. 선택이라는 행위 자체가 문제라기 보다는요. 경쟁 구도에 모두가 연루될 수밖에 없으니. 저희가 처음에 탈락 영화에 대한 선정 얘기를 했을 때도 이게 곧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선정된 영화들을 향한 비판은 아니라는 얘기를 했었잖아요. 작품을 출품한다는 건 다 어딘가의 자리가 필요하다는 마음이 우선일 텐데. 영화제의 행사, 프로그램, 심사 방식 등이 생태계의 경향, 문화, 구조를 만들어내고, 사실 그 구조에 저희가 같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기도 해서, 문제의식을 가졌다고 자유로울 순 없는 것 같아요.
현주:맞아요. 우선 다큐멘터리 영화가 보여질 수 있는 판이 좁잖아요. 근데 저는 이 판이 좀 다채롭고 재밌으면 좋겠거든요. 그러니까 아래층 영화제는 정말 어설프더라도 조금의 다른 틈을, 같이 놀 수 있는 판을 더 벌여보고 싶었어요.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내가 돗자리 하나 더 핀다!
세연 : 오, 그렇다면 아래층 영화제는 탈락을 영웅화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서로의, 혹은 자신의 작업을 환대하고 싶나요?
현주 : 작업을 성공과 실패, 선정과 미선정을 떠나 사실은 모두 얘기하고 싶어서 작업을 하는 거라고 생각이 들어서, 그 얘기를 같이 할 사람들을 찾아 나서는 것 같아요. 가끔 어떤 작업을 보면 엄청 이해될 때가 있잖아요. 관객이 저도 모르던 마음 같은 걸 작업에서 발견해서 질문해 주면 그냥 그걸로 더 작업을 환대 할 수 있게 되는 거 같아요.
다솜:저도 계속 걱정했던게 아래층 영화제가 어떤 탈락이나 실패라는 것을 다시 낭만화하는 방향으로 읽히진 않길 바랐어요. 현재를 인정하고 직면하는 게 아니라 다시 성공을 위한 자양분이 되는, 미래지향적인 게 불편했던 것 같아요. 탈락해도 되지! 못해도 되지! (그래도 스스로 힘들긴 했지만요..) 계속해서 어떤 성공을 가정하는 것이 현재와 거리감이 생기는 것 같아서 좀 더 현실적이게 생각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내가 원하는 이야기나 방식, 표현이 있음에도 그게 제 뜻대로 몸이 안 움직일 수도 있잖아요. 그래도 그렇게 하고 싶었던 진짜 근원적인 그 마음만큼은 적어도 창작하는 사람 스스로는 인정해 주는 게 환대 같아요. 조금 못하고 좀 못 만들었고 좀 뜻대로 안 됐어도 그 시작하려던 것만큼 무시하지 말자. 좁은 선택지에서는 주변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잖아요. 영화제 선정이 점점 ‘상영’ 자체에 대한 의미보다 어떤 영화제에서 틀었는지가 중요한 지표로 이야기 될 때도 있고요. 영화제라는 것은 다음의 기회를 만들어내는 곳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창작자 스스로도 계속 의식할 수밖에 없고 자기 작업을 더 검열 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요.
현주:너무 본질적인 이야기로 가는 것 같지만, 꼭 다큐멘터리가 업일 필요는 없잖아요. 시기마다 소재를 찾고 때마다 영화제에 출품해야 다큐멘터리 감독이고 그런 건 아니니까. 좀 더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말들이나 표현하고 싶은 게 생길 때 작업을 하는 것이 목표예요. 다큐멘터리는 나의 정체성 중 하나이고,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인 거라고 생각하면, 성공 혹은 실패의 논리에서 좀 더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다솜: 업으로 한다는 건 어떻게 보면 다큐멘터리가 내 생계를 책임져 줄 수 있는지를 계속 측정해야 되는 일인 건데, 개인적으론 꼭 그 길만 있다고 생각하고 싶진 않아요. 작업을 하는 것이 업으로 연결을 잘 시켰느냐 못 했느냐라고 하면 저는 계속 아마추어일 수 밖에는 없을 것 같아요. 그게 싫지 않고요. 아마추어에다가 영화제 상영 이력까지 없으면 스스로 작업자라고 말하기에도 좀 머쓱해지지만. 그래도 저의 추구미는.. 전혀 다른 생계를 열심히 하는 와중에도 한번씩 작업 하는 거 거든요. 그래서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거고요. 여러 생활과 붙어 있는 면면이 좋아서요. 그런데 다큐멘터리로 돈까지 벌어야 된다라고 하면 저는 작업으로 선택하진 않았을 것 같아요. 저는 무슨 일이든 하면서 먹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상황에 따라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살아요. 그게 더 자유롭다고 느끼고요. 예술을 하고싶은 건 제도화된 구조에서 좀 벗어나고 싶은 건데, 이 안에서도 똑같은 구조를 재생산한다는 건 사실 좀 재미없는 일이긴 해요. 모든 작업이 계속 가치로 환산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생계가 된다면 작업 자체를 계속 환산의 토대 위에서 바라봐야 되는 순간이 많아질 수밖에 없잖아요.
세연 : 제도(영화제)가 수용할 수 없는 또는 감당하기 어려운 작업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있다면 특정한 형식이나 주제, 태도 같은 어떤 경향을 떠올릴 수 있을까요?
다솜:영화제가 일방향적으로 수용하고 감당하는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수많은 작업 중에서 한 작품을 선택 해야 할 때 망설일 수는 있겠다고 생각해요.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영화제에서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기 어려운 선택은 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특히 사소하고 개인에게 의미가 귀속된 작업처럼 보인다면 더더욱 선택을 하는데 주저함이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해요. 작년과 재작년 몇몇 영화제들의 심사평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카메라를 든 사람들은 자신에게 익숙한 환경과 공간에 안전하게 갇혀 있는 것 같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끈기 있게 대상을 포착하는 다큐멘터리 출품작의 편수가 줄어든 것 또한 우려할 만한 지점이라고 느낍니다. 타자의 삶을 관찰하고, 카메라와 피사체가 접촉하는 관계를 성찰하는 취재와 기다림의 시간은 줄어들었습니다. 그 대신 서로 무관해 보이는 역사적 사료들을 특유의 지성적인 몽타주를 통해 영화 안에서 재구성하는 이른바 에세이적이라고 부를 만한 시도들이 확연히 늘었습니다. 저희는 이런 작품들이 선보이는 자유로운 사유 체계와 탄력적인 형식에 매혹되면서, 이러한 흐름이 ‘나’의 직관과 관심사를 빠르게 단편영화라는 작품의 단위로 옮겨야 하는 창작자들의 강박과 조바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도 했습니다.”1
“출품작 중 다수였던 다큐멘터리의 경우 주관적 다큐와 사적 에세이가 상당했습니다. 회고의 아카이빙을 통해 미래를 맥락화하는 역량, 다큐의 미학적 형식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을 품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2
어떤 우려의 목소리가 반영되었는지 일부 공감이 가면서도 한편으론 기운 빠지기도 했어요. 이러한 비평을 내는 주체들도 창작자들과 본인들을 안전하게 분리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창작자들이 자신의 바운더리 안에 매몰되거나 미학적 경향과 유행을 좇는 건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재에만 천착하며 소위 힙한 작업만 하는 것도 별로죠. 그러나.. 경계를 부수는 작품들이 세상에 나오려면 창작자만 성찰하면 되는 걸까요? 어떠한 구조와 제도, 환경이 창작자와 연루되고 있는지 묻지 않는 게 아쉽습니다. 창작자들의 조바심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그리고 여전히 주관적이고 에세이적인 작업은 사유의 한계에서 발생되는 - 잠재성을 지닌 1인칭의 장르로서 나아가기 보다, 개인적이고 사적인 것으로 먼저 분류되고, 어떤 면에선 비겁한, 하위의 작업으로 여겨지는 것 같고요. 중요한 것은 1인칭이든 3인칭이든 인칭 자체로만 획득되는 진실이란 없다는 점 아닐까 생각해요.
현주:영화제에 수용되긴 어려운 영화는 긴 영화입니다. 단순 계산으로 3시간짜리 영상을 틀면 단편 6개 정도를 틀 수 있는 시간을 잡아 먹는 것이기에, 유명 감독이 아닌 이상 매우 긴 다큐멘터리가 영화제에 수용 되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리고 시기마다 키워드가 되는 주제들이 있잖아요. 그 주제에서 벗어나거나, 변두리에 있는,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투박하게 편집된 어떤 얘기들은 수용되기 어렵다는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거기서 좀 답답함을 느꼈어요. 세련되게 표현을 해야만 어떤 이야기가 받아들여지는 것일까 하고. 특히 서울에 위치한 영화제들은 당연히 서울에서 일어나고 있는 얘기들을 먼저 수용한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심사위원에게 닿지 않으면 제대로 논의가 안 되고 그냥 넘어가 버릴 수도 있고, 심사위원들의 위치성이 어떠한 한계로 작동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 같아요.
다솜:영화제가 매년 출품 수가 증가했다고 홍보 하는데, 심사위원수는 매번 셀 수 있을 정도잖아요. 그랬을 때, 대체 어떠한 토론과 고민 끝에 결정을 한 건지 사실 알기 어렵고요. 그 기간 안에 작품들을 끝까지 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죠. 사실 영화제는 상영 옵션 중 하나가 되면 좋겠다 싶어요. 오히려 영화제에 계속 더 많은 책임을 요구하는게 어쩌면 그 책임을 계속 부여하는 것 같기도 해서 양가적인 마음이 듭니다. 예산과도 연결되는 문제고요. 현재로서는 창구가 많지 않다 보니까 몇몇 영화제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어요.
현주 : 권위를 지닌 주체로서 영화제 안에서도 다양한 시도와 발굴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관객으로서도 재밌는 걸 많이 보고 싶거든요.
다솜:맞아요. 이미 전주국제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알려진 작품들이 서울독립영화제에 그대로 선정되는 걸 보면서 독립 영화제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 수 없더라고요.

세연 : 누군가가 주관적인 지표로 작품을 선별하는 대신, 아래층 영화제는 그 ‘고르는 일’ 자체를 인간의 손을 벗어난 방식으로 진행하고자 하는데요. 구체적인 무작위 선정 방식이 궁금합니다! 이러한 우연적인 접촉 과정을 공개하실 생각도 있으신가요? 무엇이 뽑힐지 운영진조차 모르는 순간 역시 아래층 영화제만의 장면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주:맨 처음에는 영화 이름을 쪽지에 써서 (다솜이) 키우는 반려견이 밟는 영화를 상영하자! 이렇게 생각을 하다가 우연히 만나는 누군가에게 뽑기를 부탁해 보자는 생각도 했었죠. 지금은 손으로 쪽지를 뽑는 걸 생각했어요. 근데 아무런 세팅 없이 뽑기를 하게 되면 상영 시간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 하는 것도 고민되더라고요. 뽑기를 보여주는 것도 그렇고요. 뭔가 우당탕탕 하게 될 것 같은데..
다솜:만약 극우 작업이 들어왔을 땐 어떻게 할 지도 얘기 했었잖아요. GV 참석 가능하고, 와서 대화로 책임질 수 있으면 일단 오케이인 것으로. 그래서 어떻게 보면 저희가 무작위라는 것에 우연을 기대한다는 건 이미 한겹 씌워진 안전함을 전제하고 기대를 하는 것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설레잖아요. 어떤 작품이 올지. 근데 진짜 그 작업들이 저희의 취지나 어떤 가치를 반하는 작업일 수도 있는데, 그걸 먼저 생각하고 무작위를 기대한다기보다는 더 취지에 맞는, 대화를 하고 싶은 작업이 되기를 기대하고 무작위를 하는 마음이 있지 않을까. 어떻게 보면 안전한 우연을 기다리는 마음도 반영이 되어 있을 수 있겠다.
저는 이런 양가적인 것이 재밌긴 하거든요. 우리는 우연을 바라지만 우연을 두려워하는 마음도 있는 것. 근데 다만 계속 두려워만 하면 그 두려움 때문에 어떤 것은 만나지 못하는 기회가 되는 거라서 그 위험을 감수하는 행위 자체로서 의미가 있는 거지. 완벽한 우연을 만들어내기 위한 세팅이라는 생각은 없었던 거고요. 한편에 안전함을 전제하는 약간의 연약한 마음도 있었다는 모순적인 마음을 나누고 싶었어요.
현주:완전 연약한 마음이고요. 끊임 없이 출품작 신청 폼을 새로고침하고 있었어요.
세연 : 올해 DMZ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가 열리는 ‘일산 레이킨스몰 3층’에서 한 층만 내려가면 영화제 아래층 영화제가 열리는데요. 완전히 다른 장소로 떠나는 대신, 엘리베이터를 잘못 내리면 도착할 수 있는 아래층을 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처음부터 이러한 기획을 염두에 두고 장소를 찾으신 건가요, 아니면 장소를 발견한 뒤 ‘아래층 영화제’라는 기획이 구체화된 건가요? 위층과 아래층이 이렇게 물리적으로 겹쳐 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길 기대하시나요?
다솜:처음엔 여러 장소를 열어두긴 했었잖아요. 약간 다른 극장 장소나 야외나 근데 사실 공실만큼 매력적이지는 않아서 공실을 먼저 두드려 보자 했었고 저희가 대화를 나누던 시점에 가장 빠른 영화제가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였고요.
현주:저희 둘다 냈다 떨어지는 영화제이기도 하고, 다큐멘터리 영화제들 중에서는 한국에서 제일 큰 영화제라고 할 수도 있고요.
다솜:타이밍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처음엔 1층과 2층에 두 개의 공실이 후보로 있었잖아요. 2층의 공실을 택한 이유를 더 말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현주:1층은 정신이 조금 없을 것 같았어요. 유동인구가 많다보니. 2층 공실이 좀 더 분리되어 있고, 내부에 뜯어진 콘크리트나 외부에 ‘임대’라고 붙여졌던 흔적들이 공실이라는 공간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2층과 3층의 섞임, 교란 이런 것들을 노리기에 DMZ에 오셨던 분들이 슬쩍 들릴 수 있는 대목에 위치하기도 하고요.
다솜:맞아요. 저희가 어쨌든 같은 기간에 하기로 결정을 한 것도 어떻게 보면 선택한 거잖아요. 일단 저희가 일차적으로 DMZ의 관객이기도 하고, 다큐멘터리 영화제를 찾는 다른 관객들을 좀 좋은 의미로 빼돌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죠. 공실 대여를 정하기 전에는 DMZ에 찾아오신 분들을 따로 모객해서 비상구에서 노트북으로 저희의 영화를 보여줄까도 말했었잖아요.
현주:아, 맞아요. 근데 1대1로 영화를 보여주는 것이 현실적으로 너무 부담스러울 것 같아서 여럿이 함께볼 수 있는 공간을 찾기로 했죠. 윗층에 국제영화제가 열릴 때, 아래층에 저희가 침입을 하는 게 교란과 축제를 여는 가장 재밌는 방식일 거라 생각했어요.
다솜:영화제가 꼭 선정된 감독과 해당 작품을 보러 오는 관객들만의 것은 아니기도 하잖아요. 내가 선정되지 않았어도 어떻게하면 그 영화제를 더 잘 즐길 수 있을까? 물론 관객으로 가면 되지만, 미선정된 작품을 가진, 이력이 없는 창작자로서는 어떻게 그 안에서 소통하고 즐길 수 있을지 사실 잘 떠오르지 않았던 거 같아요.
현주:아 그리고 제가 비둘기 파빌리온!3과 슬램댄스영화제4를 레퍼런스로 보내드렸었잖아요. 베니스 비엔날레 야외에 비둘기의 눈높이로 세워진 비둘기 파빌리온의 정신을 가지고 오고 싶었어요.
다솜:처음엔 혹시 누군가에게는 더 구분을 위한 걸로 읽힐까 고민됐는데, 이제 슬램 댄스의 기세를 보고 충분히 해도 괜찮겠다. 좀 부딪히는 거를 하는 게 필요하겠다는 확신이 들었죠.
세연 : 보내주신 글로 이해하자면 아래층 영화제는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제이면서도, 탈락한 감독들이 관객으로서 모이고 떠드는 모임에 가까워 보이기도 합니다. 어떤 만남을 상상하고, 관객과 감독에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교류의 손을 건넬 예정이신가요?
현주:저는 기본적으로 영화를 같이 보고 대화를 하는 것 자체가 긴밀한 교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너무 탈락에 집중된 얘기보다는 어떻게 작업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떠올렸어요.
다솜:누군가에게는 이 영화제 되게 교류에 있어 새로운 시도를하는 걸로 비춰질 수도 있겠다 싶어서 갑자기 초조해졌어요. 좀 더 긴밀한 어떤 네트워킹을 좀 더 상상하고 있을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어요.
현주 : 저희는 관객과의 만남 외에도 중간에 자유시간을 갖고 특정 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대화 세션과 그냥 자유롭게 떠드는 시간을 갖기로 정했잖아요.
다솜 : 맞아요. 이미 관객석과 스크린이 구분 되지도 않는 공간이라 이미 장소 자체가 교류가 일어날 수밖에 없기도 하고요. 작품에 대한 질의 외에도 사는 얘기를 나누고, 관객과의 만남 이후에 바로 영화를 상영하기 보다 좀 더 여지를 줘서 원하는 사람들은 더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장면을 좀 기대했어요. 덜 경직된.

세연 : 특히 영화제에 선정되지 않았을 때 창작자가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다른 경로에는 무엇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탈락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영화제에 출품하게 되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을까요?
다솜, 현주 : 자체 상영회요.
다솜:온라인 상영도 해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인드그라운드 라이브러리 신청이 올라와서 제출했어요.
현주:저 같은 경우에는 이전에 만든 <비둘기는 언제나 당신 곁에>가 온라인으로 보여지는 걸 원하지 않아서 온라인 상영은 고려하지 않았어요. 작품이 그냥 풍경처럼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바질 페스토 노동 샌드위치 >의 경우에는 원래 전시 목적으로 만들기도 했는데요. 영화제는 모두 탈락하고, 상영회와 전시라는 두 가지 형태를 오갔어요.
다솜:공간을 대여해서 상영하는 게 더 좋은 면도 있잖아요, 지원을 받는 게 아니라면 모든 걸 사비로 부담해야하는 게 힘들고요. 자체 상영회를 하면 더 원하는 방향으로 꾸려 볼 수 있기도 하니까, 저도 극장 상영 보다는 좀 더 작은 데서 하고 싶었거든요. 생활이 좀 묻어 있는. 최근에는 방, 누군가의 방을 찾아가서 방에서 틀도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현주 : 극장 상영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면 왜 영화라는 형태를 선택한 건지 질문을 가끔 받잖아요. 영화라기 보다는 미술 쪽 작업이 아니냐.
다솜:근데 영화를 규정하는 게 상영 시스템으로만 있는 건 아닌 거 같고, 한편으로는 너무 과도하게 환경에 집착하는게 저한테도 있다고 생각 하기도 했어요. 어떤 환경에서 하고 싶다라는 건 특정한 방향으로, 어떤 오해가 좀 덜 생기게끔 의도가 전달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기도 한 거라서 그 부분에선 스스로 자유롭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현주:일반적으로 영화는 개봉을 하면 어디든 뻗어 나갈 수 있잖아요. 극장시스템이 갖춰진 환경이라면. 반면에 장소 특성적인 작업, 환경을 고려한 작업을 한다는 점에서 미술적 특성이 섞인 것 같기도 합니다. 사실 이 둘을 명확히 구별지으려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요.
다솜 : 탈락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영화제 출품한다는 게 어떤 대단한 시도라기 보단 상영 옵션의 여지가 많지 않아서 관성적으로 하는게 있었어요. 또 이력이 남으면 나중에 제작지원을 받을 때도 활용할 수도 있고요.
세연 : 그렇다면, 한 편의 독립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진 뒤 관객에게 도달하기까지 일반적으로 영화제는 어떤 역할을 하나요?
현주:다큐멘터리의 장점이 그렇게 포멀한 제작 과정을 거쳐서 예산을 얻지 않더라도 만들 수 있다라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대체로 혼자 기획해서 촬영 하고 편집 해서 완성 하면 영화제 내거나 전시를 하거나 했고요. 근데 어느정도 규모가 있는 작업을 만들고 싶다면 제작 지원을 넣는 것부터 시작하지 않을까요? 다솜님은 제작지원 넣으셨어요?
다솜:저는 중간에 제작지원에 참여해서 피칭을 두 차례 했어요. 저는 모든 걸 혼자 하진 않았고, 제작 과정에선 프로듀서님을 만난 게 가장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미디액트 워크숍에서 만났는데, 당시엔 제가 작업을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고 물어볼 사람도 없어서 대뜸 연락처를 묻고 만나달라고 했거든요. 그 뒤에 한 달에 한 번씩 서로의 작업을 보고 얘기 하는 걸 1년 동안 하면서 신뢰를 쌓게 되었어요. 그러다 서로의 작업을 자연스레 도와주고 스텝으로 참여를 하게 된 거였거든요. 저는 그분의 조연출을 하고 그분은 제 작업 PD를 하고요. 사실 피칭은 제작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되진 않았어요. 과정 자체가 좋은 경험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제겐 긴 호흡을 같이 한 페이스메이커가 있다는게 작업을 지속하게 한 점이었어요. 돈이 없어도 교류할 수 있는 동료 스탭이 있다는 건 서로 많은 걸 내려놓아야 가능하니까요. 이상적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금전적인 보상을 담보로만 동료를 찾는게 아쉽기도 했거든요.
현주 : 다큐멘터리의 제작과정이 미술 쪽과 그리 다르진 않을 수 있는데 피칭은 다큐멘터리나 영화 쪽의 독특한 부분이지 않을까 싶어요.
다솜:맞아요. 그 피칭이라는 게 독특하잖아요. 멘토랑 멘티를 구성해서 작품에 대한 소개를 준비 하고, 경쟁을 해서 선정이 되면 지원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죠. 초기 기획 개발 피칭부터 후반제작 피칭까지 단계별로 제공되는 시스템이고요. 다큐멘터리는 시나리오가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예측 불가능한 점이 있는데, 피칭은 확신의 언어로, 마케팅의 측면에서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될 때가 많아서 곤욕스러울 때가 있었어요. 영화제는 이런 식의 지원양식을 계속 만들어내는 생산 주체이고 다큐멘터리는 산업적인 지형 안에서 가치평가 되고요. 연출을 한 사람이 피칭까지 잘 소화하기 사실 어렵고, 작업의 간극을 만들어 낼 때 괴롭잖아요. 제작지원이 필요하다면 전략이 필요할 때도 있겠지만, 예술이 제도권으로 들어오면서 산업적인 포맷이 점점 당연해지는 게 기묘하기도 해요.
현주:그리고 명확한 목적성이나 시의성이 없이, 모호한 어떤 감정이나 느낌을 전달하고자 한다면, 이런 피칭에서는 살아남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고 느껴졌어요.
세연 : 마지막으로 딴소리지만, 이 부분이 개인적으로 몹시 궁금했습니다. 시각예술 지원 사업은 심사 과정을 추적하거나 예측하기 어려운 분야라서요. (저만 그럴수도 있습니다.) 정말 프로그래머가 언제 링크를 열었는지, 어떤 기기와 OS로 봤는지, 몇 분이나 재생했는지 확인할 수 있나요? 운영진분들은 얼마나 질척이면서 흔적을 추적해 보셨나요? 조회수가 하나씩 올라갈 때 어떤 마음이 드셨나요? 솔직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현주:전 마음이 안 좋을까봐 질척이며 추적하지는 못했는데요. 유튜브나 비메오 같은 플랫폼에서 시청자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잖아요. 그런 데이터를 저희는 심사위원들을 추적할 때 쓸 수 있는 거죠. 가끔 가다 살펴보면 갑자기 영상의 조회수가 막 오를 때가 있잖아요. 그러면 ‘아 이제 내 영화를 심사하고 계신 건가?’ 추측하는 거죠.
다솜:유튜브 계정 안에서는 기본적인 분석이 가능한데, 디바이스 타입이랑 모바일로 받는지 안드로이드인지 맥인지, 윈도우인지 이런 식으로 볼 수 있어요. 분량을 몇 퍼센트 정도 봤는지도 나오죠. 되게 무궁무진해요. 그래서 솔직히 재밌어요. 저희는 심사가 언제 끝나는질 알 수가 없잖아요. 대부분 언제 공개를 한다고 말을 하지도 않고, 하더라도 경쟁 작품에 한해서만 공개를 할 때가 있고요. 그래서 이미 심사가 끝난 걸까, 좀 더 남은 걸까하는 기간이 있다 보니까 어떤 기대감을 계속 갖고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현주:음 다른 얘기지만, 제가 TIDF에 출품했었는데, 거기에선 출품 확인 메일과 선정여부를 알려 주는 거예요. 공식 발표 전에 탈락 메일이 왔던 걸로 기억하는데, 너무 좋았어요. 탈락했지만, 이 정도의 교류가 있다는 것이.
다솜:너무 좋다. 영화제에 출품한다는 게 어떻게 보면 열심히 만든 작업을 나름 큰맘 먹고 공개를 하기로 결정하 거잖아요. 작업을 했다고 해서 모두가 공개를 하고 영화제를 내는 건 아니기 때문에. 보낼 때는 많은 것들을 따져서 해야 되지만, 돌아오는 건 사실 없을 때가 많잖아요. 심지어 출품이 잘 되었습니다라는 안내 메일도 없는 경우도 많고요. 알 수 없으니까, 내 작품을 봤을까? 궁금해서 보게되는 것 같아요. 이게 꼭 됐으면 좋겠는 마음도 있겠지만. 누구라도 보길 바라는 마음에서 보냈는데 진짜 보긴 한 거야? 이런.
현주:관객이 있는 거야?
다솜:맞아요. (ㅋㅋ)
제1회 영화제 아래층 영화제
2026.9.13(일)-14(월)
킨텍스 레이킨스몰 2층 공실(245호)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아래층
공식 오픈 시간은 @downstairs_filmfestival 인스타그램을 확인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