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퀴어 커뮤니티에서의 연구와 현지조사는 많은 경우, 하나의 유행이다. 교수와 학생, NGO와 사회복지사, 그리고 유튜브, 인스타그램, 샤오홍슈의 인플루언서들까지 퀴어 바, 공원, 사우나 그리고 마작방으로 몰려들어 우리의 삶을 쳐다보고, 우리의 기쁨과 슬픔을 구경하고, 우리의 고통을 문화적, 정치적 그리고 학술적 상징으로 빚어낸다. 지난 몇년간, 나는 중국의 퀴어 운동을 직접 겪은 마지막 세대 중 한명으로서 우리 모두를 웃게 만들 정도로 터무니 없는 여러 연구를 목격해 왔다. 그 연구들은 항저우의 게이 사우나에 들어가 비커에 물을 떠 성병과 HIV 검출률을 조사한 중국인 연구자부터 청두 드렉볼에 나타나 아무나 붙잡고 “중국의 성소수자 차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묻던 백인 ‘인권 관광객’까지를 포함한다. 이러한 연구 방법과 접근 중 일부는 비판을 받았지만, 중국과 아시아의 퀴어 커뮤니티에서는 오늘날까지도 그와 비슷한 많은 연구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그러다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연구 윤리가 도래했다. 점점 더 많은 기관과 연구자들이 현장에 들어가거나 커뮤니티 안에서 연구하기 전에 반드시 윤리 심사를 받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중국에서는 비의료 연구의 상당 부분에 의무적인 윤리 심의 절차가 없기 때문에 그 심사의 질이 들쑥날쑥하다. 어떤 연구자들은 의과대학이나 소속 기관을 찾아가 자신의 프로젝트에 대한 연구윤리 심사 서류를 제출한다. 다른 사람들은 해외에서 윤리 심사를 받거나 서구에서 훈련받은 연구자에게 심의를 맡긴다. 비록 이들이 백인이자 이성애자이며 사회과학 훈련이나 타문화에 대한 경험도 없고, 현지 상황에 대해서는 완전 무지하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연구자에게 “질문이 너무 민감합니다.”, “데이터는 어떻게 보호할건가요?”, “어떻게 익명화할 건가요?” 등의 요구를 늘어놓을 자격을 갖고 있다. 아시아로 들어오거나 해외에서 아시아로 돌아오는 모든 연구는 마치 겹겹의 도덕적 후광과 윤리적 족쇄를 두른 듯하고, 모두가 커뮤니티의 최선의 이익을 위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정말로, 진심으로 현장에서 무언가를 바꾸기는 했을까?
나는 중국 동부의 한 도시에서 퀴어 크루징 장소에서 장기간 현지조사를 한 적이 있다. 나무들 사이로 이어진 공원 구역에는 주변부로 밀려나 떠돌며 그저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수많은 사람들이 많았다. 나이 든 게이 남성들, 도시와 시골을 오가며 떠도는 퀴어들, 노숙자인 퀴어들, 아픈 이들, 그리고 누군가는 예상했듯이 많은 성노동자들이 있었다. 처음에 내 연구는 주로 이 작은 숲을 즐거움과 유희의 장소로 삼고 있던 노년의 게이 남성들에게 초점을 맞췄었다. 어떤 할아버지들은 이야기를 나누다 내 손을 쓰다듬고,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자신을 안아달라고 했다. 심지어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내 옆으로 다가와 가슴과 엉덩이를 움켜쥐기도 했다. 나보다 거의 일흔 살 가까이 많은 게이 할아버지는 나중에 다시 만난 자리에서 내 사타구니로 손을 뻗으며 “물건 좀 검사해보자”라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 연구자가 이 할아버지들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성희롱을 멈춰주세요”라고 외치기 전에, 잠깐 멈추어보자. 맞다. 이런 행동은 성희롱이다. 나 역시 처음 현장에 들어갔을 때 이런 행동들의 일부 때문에 긴장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내가 이 이야기를 젊은 퀴어 친구들에게 들려주었을 때, 그들 대부분은 타당한 이유를 들며 이를 농담처럼 받아들였다.
많은 이들이 곧바로 이해했다. “늙은 게이는 다 그래.” 그들에게 나는 아무것도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이미 이 할아버지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고 있었다. 그들은 외롭고, 내쳐졌으며, 경계에 대한 의식이 전혀 없이 살아온 사람들이다. 이곳은 그들이 사람을 만나고, 욕망을 쫓고, 퀴어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었고, 이곳에 온 우리는 침입자일 뿐이다. 우리는 그들의 규칙을 배워야했다. 바로 이러한 성희롱과 거친 말투, 어떤 의미에서는 부적절한 성적 농담을 통해 노년 게이 남성들은 자신의 성벽을 짓는다.
중국에 있는 노년의 퀴어들은 스스로를 보호할 방법이 없다. 그들은 가족 안에서 소외되어 있고, 이성애자 자녀와 배우자에게 미움 받으며 많은 이들이 노년 돌봄의 위기에 직면해있다. 그들은 퀴어 커뮤니티 안에서도 소외되어 있는데, 젊은 퀴어들은 한편으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두려워한다. “우리도 퀴어지만 (할아버지 같은) 그런 부류는 아니야.” 사회 안에서도 그들은 주변부에 놓여 있는데, 중국의 연금과 사회 복지시스템은 이들을 돌봄이 필요한 노인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중국의 젊은 도시 중산층 퀴어들 사이에서는 특수하게 퀴어 종말론적인 느낌을 지닌 농담이 퍼지고 있다. "우리의 업보는 이거야. 젊을 때 실컷 즐기다가 늙으면 이성해자 요양원 간병인들한테 맞아 죽는 거지.” 하지만 사실, 늙은 퀴어들은 극도로 가난해 요양원에 갈 수도 없고, 보험도 없다. 게이들이 모이는 이러한 장소들이 그들의 마지막 피난처다. 국가와 커뮤니티는 이미 한차례 그들을 거부했던 이성애적 가족의 품으로 밀어넣을 뿐이다.
타인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그들의 마지막 방어선이다. 실제로 나는 그들의 성희롱을 멈추게 하고, 그들의 대화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수 있는 여러 간단한 방법을 알고 있었다. 나는 몸을 돌려 아흔이 넘는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요즘 건강은 어떠신지 물을 수도 있었다. 반대로 그들의 손을 잡고 농담을 나누고, 그들이 미워하는 상대를 함께 욕할 수도 있었다. 때로는 반쯤 경고하듯 농담으로 “또 만지면 나 이제 대화하러 안 올 거예요”라고 하기도 했다. 그러면 우리 사이에 경계가 협상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실제 퀴어 세계를 마주했을 때, 이른바 연구윤리와 거리두기를 고수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그저 불가능하다. 달리 말해, 연구자라면 필요할 때는 부디 경계를 버리고, 관찰자가 되기를 멈추고, 연구하기를 멈추길 바란다. 나는 퀴어연구를 하는 다른 연구자들에게 자주 언급하는 또 다른 경험이 있는데, 이 역시 윤리적으로 끔찍해보이는 일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나와 한 남성 성노동자 사이에 돈이 오갔다.
플라워는 내가 다른 현장에서 만났던 남성 성노동자였다. 그는 젊었고, 안정적인 직업 없이 이른바 ‘대디들’의 지원으로 생활했는데, 그 지원에는 대가가 따랐다. 그는 크루징 장소에서 간헐적으로 성매매를 했다. 그는 마작하기를 좋아했고, 하루하루를 그때그때 살아가고 있었는데 여러 사람에게 빚을 지고 있었고, 입에는 욕설과 거짓말을 달고 살았으며, 심지어 불법 대부업자들에게 신분증까지 팔아넘기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그의 말을 한마디도 믿지말고, 단 한 푼도 빌려주지 말라고 경고했다. 나는 ‘(사회적으로) 밑바닥에 있는 퀴어들’의 파산한 상태에 깊은 관심이 있었기에 그에게 몇 차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시간당 50위안, 약 8달러 정도였던 내 인터뷰 사례비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는 계속 거절했다. 심지어 거꾸로 내게 성적인 서비스를 원하는 거냐고 묻기도 했고, 나는 곧바로 거절했다. 그러다 우리가 처음 만난지 한두 달쯤 지난 어느 날, 그가 갑자기 인터넷으로 전화를 걸어와 지금 당장 만날 수 있는지 물었다. 나는 이 만남이 어떤 종류의 서비스가 아닌 정식 인터뷰로 간주되는 것인지 확인한 뒤 만나러 가기로 했다.
그는 완전 수척해 보였고 셔츠에는 구멍이 나있었다. 그 때에 우리는 평소보다 훨씬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의 가족, 시골과 도시를 오가며 살아온 삶, 사회 최하층에 놓인 퀴어들을 노리는 사기 조직과 범죄 집단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후 벌어진 일들 때문에 연구윤리상 그 내용을 사용할 수 없게되어 자세한 내용을 공유할 수 없어 유감이다. 인터뷰 내내 그는 내게 계속 돈을 빌려줄 수 있는지 물었고, 나는 한두 번은 일반적인 연구자의 태도로 적당히 얼버무리며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를 다시 돌리려 했다.
그러다 그는 갑자기 크게 흥분하며 그 자리에서 바지를 내렸다. “사장님, 치료받으려면 돈이 필요해요.”
플라워의 성기에 궤양이 생긴 것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그와 같은 성노동자들이 마주하는 폭력, 차별, 상처와 질병을 기록하고 이해하려고 애써왔다. 그러나 바지가 내려가고, 이 잔혹함 그리고 플라워와 플라워가 스스로 “썩어빠진 인생”이라 불렀던 삶을 직면하게 되자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머릿 속이 하얘졌다. 충격과 연민, 슬픔을 넘어 그 순간 나를 지배했던 감정이 다름아닌 두려움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 나는 중국의 퀴어 현장에서 스스로를 나름 ‘고참’이라고 생각했지만, 플라워가 겪어온 고통 앞에서는 나는 주춤하고 말았다.
나는 연구라는 목적을, 거리두기를, 그리고 플라워와 플라워와 같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해결책’을 찾겠다는, 내가 늘 ‘고귀하다’고 여겼던 목적 역시 포기했다. 돈은 내가 그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위로였다. 나는 두 차례에 걸쳐 그에게 1,000달러가 넘는 금액, 약 7,000위안을 보냈다. 그는 처음에 끝까지 “내게 빌리는 돈”이라고 우겼다. 두 번째에 나는 말했다. “이 두 차례의 돈 모두 내가 주는 선물이에요. 부디 이 돈으로 치료를 받으세요… 의사 선생님과 자원봉사자를 소개해 드릴 수 있어요. 제가 도울 수 있는 다른 일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이 이야기가 따뜻한 결말로 끝날 것이라 생각했는가? 유감이지만 그렇지 않다. 그가 두 번째로 돈을 받으러 왔을 때, 나는 이미 그가 늘 그랬듯 그 돈을 마작, 술, 그리고 유흥에 써버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내가 찾아준 의사에게 가지 않았고, 자원봉사자들이 그를 찾아갔을 때도 여전히 병원에 가기를 거부했다. 게이, 퀴어 하층에 속한 수많은 사람들처럼, 그는 내일을 위해 살지 않았다. 그의 삶에는 희망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그후 오랫동안 나는 우울한 기분에 빠져, 마음속에서는 온갖 생각들이 뒤엉켜 맴돌았다. 그에게 돈을 빌려준 것이 옳은 결정이었을까? 내가 그를 도울 수 있었을까? 어떻게 도울 수 있었을까? 내가 뭘 더 할 수 있었을까? 나는 이러한 질문들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었다. 어떤 이들은 내가 그에게 돈을 빌려주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했지만, 대다수는 내가 잘못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플라워를 마주했을 때, 나는 그 상황을 견딜 수 없었고, 그 사실만으로도 내가 한 모든 일의 이유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성소수자 인권 분야에서 오래 활동해온 한 선배 변호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이 진흙탕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들에게 밧줄을 던지는 일을 멈춰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플라워는 내가 자원활동자들을 그에게 소개해준 후에 내 연락처를 삭제했다. 내가 현장으로 돌아갔을 때 나는 그를 찾을 수 없었다. 할아버지들은 그가 그의 삶을 비웃듯 요약했듯이, 어느 겨울에 갑자기 사라졌다고 말했다. “나는 천국에서 내려온 작은 꽃의 요정이야.” 나는 그에게 바친 이 시를 제외하고 이후에 어떤 연구에서도 플라워의 이야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 시에 담긴 모든 경험은 비슷한 형태로 다른 누군가의 삶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 그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그는 머지않아 잊힐지도 모르지만, 그는 이 시대 퀴어 세계의 집단적 기억을 이루는 한 부분이다.
플라워 이후에도 나는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수많은 장면들이 그를 다시 떠올리게 했다. 잔혹하면서도 아름다원 이 퀴어 세계를 마주하며, 나는 플라워라면 아마 이렇게 말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를 이해하고, 관계를 맺고, 친구가 되어라. 우리를 위해 무언가를 해라. 그리고 그럴 생각이 없다면, 제발 우리 세계에 침입하지 마라.
윤리 위반
거리에서 잠을 자던 사람,
공원에 누워 지내던 사람,
학교도 겨우 마치고
집을 떠나 어둠 속을 떠돌던 당신.
온종일 술을 마시던 사람,
자신의 몸을 팔던 사람,
어디에서든 흥을 돋우며 놀던 방탕한 당신,
에이즈에 걸린 사람.
어떤 부모도 자기 자식이라 인정하지 않을 사람,
친구들에게조차 배신당하던 사람,
거리를 떠도는 외로운 유령 같은 당신,
‘더러운 병’에 걸린 사람.
마작을 하던 한 사람,
여기저기서 돈을 빌리던 사람,
하루하루만을 살아가던 당신,
‘카드빚’에 얽매인 사람.
신분증도 없는 사람,
보장도, 돌봄도 없는 사람,
조금씩 일을 할 힘마저 잃어가던 당신,
어디에도 머리 둘 곳 없는 사람
아픈 당신,
곪아 터진 당신,
남자의 몸에 잘못 깃든 작은 꽃의 요정이라 했지
언젠가는 천국의 문으로 가게 될 거라고.
정직한 당신.
속이는 당신.
순진한 당신.
무언가를 노리던 당신.
나는 당신의 청자인가
아니면 당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자인가
경멸스러운 ‘타락한 자의 구원자’인가
아니면 당신의 ‘어린양’인가
하지만 이제는 다 중요치 않다
내가 무엇이었든, 결국에는
당신을 위해 아주 작은 무언가라도 했다
그중 하나는
연구윤리를 위반하는 일
件违反伦理的事
住在街上的人
睡在公园的人
你是十几岁初中毕业后
出来流浪的人
白日纵酒的人
出卖自己的人
你是逢场作戏的浪荡子
和得了艾滋的人
父母不要的人
朋友背叛的人
你是游荡在城市的孤魂
和得了“脏病”的人
打麻将的人
到处借钱的人
你是过了一天算一天
背了“卡债”的人
没有身份证的人
没有医疗保险的人
你是慢慢没有了工作的能力
没有住处的人
疼痛的你
溃烂的你
你说你是错托到男人身上的小花仙
早晚要到天上去
诚实的你
骗人的你
天真的你
狩猎的你
我是你的听众?是你的讲述者?是可恶的“救风尘”?还是你的“羔羊”?
但这些都不重要
无论如何,我多少为你做了一些事
其中有一件违反研究伦理的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