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 EN
2026.08
타자와 함께하기: 일상에서 “우리됨”의 경험
series
오주영
필드노트
... 대만

“저희 조상은 아마도 객가였을겁니다. 이 지역의 객가 성씨는 이(李)씨, 료(廖)씨, 종(鐘)씨 인데, 우리가 바로 종씨거든요. 하지만 우리 마을의 종씨들은 객가어를 전혀 못해요. 예전에는 종씨들이 믿는 종규(鍾馗, Zhong Kui)라는 조상신이 잡귀를 물리친다고 해서 사당을 지어서 모시기도 했다는데 저희 집은 천주교를 믿어서 잘 모르겠어요.”

엽 교수님의 동창이라는 종 선생의 대답이었다. 대만의 중서부 운림(雲林)현의 론배(崙背)향은 대만 조안객가가 거주하는 지역으로 농사와 축산업을 마을의 핵심 산업이었다. 론배향의 수미(水尾)촌에 살고 있는 종씨들은 조상이 기독교로 개종한 개신교를 믿는 1/3의 주민들과 천주교를 믿는 1/3 그리고 비기독교인 1/3의 주민들로 구성되어 있다. 흥미로운 점은 개신교든 천주교든 기독교를 믿는 종씨들은 자신들의 객가 정체성에 통 관심이 없었고, 단지 조상이 객가였다는 점을 기억하고 있었다.

조안객가들의 고향은 복건성 조안으로 대만 객가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광동성 객가와 출신지역이 다르다. 조안어를 사용하는 객가는 대만 전체 객가의 1.7%를 차지하며 사용자가 가장 적은 객가어로 분류된다. 이들이 복건성 출신이라는 점은 대만 객가집단들이 공유하는 ‘의민’의 카테고리에 속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대만객가의 민남인(복건성)-객가(광동인)의 구도에서 어느 한 쪽을 택할 수 없음을 뜻한다.

종 선생은 론배 중심에 있는 론전(崙前)마을을 구경시켜 주었고, 론전마을의 성당 마당에서(종 선생이 천주교 였음으로) 조(趙)신부님과 커피를 마시고 있는 진(陳) 따거를 만났다. 호탕한 성격의 진 따거(형님 혹은 오빠)는 초면에 본인을 형님이라고 부르라고 하면서, 내가 객가를 연구한다고 하자 부인이 료(廖)씨 객가라며 바로 소개해 줄 태세였다. 료 부인은 퇴직한 산파였고, 그래서 마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내가 료 부인에게 대만 여성들이 객가와의 결혼을 꺼려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자, 료 부인은 나에게 “여기 객가는 진짜 객가가 아니에요. 오객(傲客)이라고 했는데, 북부객가처럼 그렇게 성실, 근검, 절약 뭐 그렇지 않아요. 여기에 시집와도 객가들처럼 그렇게 일 많이 안 해.” 라며 안심을 시켰다.

이렇게 자신들을 솔직하게 소개하는 객가는 처음이었다. 이제까지 만났던 객가들은 본인들의 정체성을 웅장하고 세밀하게 구성된 객가가 가옥들을 자랑했고, 명예로운 ‘의민’으로 몸을 바쳐 고향을 지킨 조상의 넋을 기린 사당을 소개하고, 열악한 경제적환경 속에서 여성이란 상대적으로 약한 신체조건에 굴하지 않고 노동과 근검, 절약으로 쌓아온 부와 올라온 자리를 증명해 보이고 싶어 했다. 물론 내가 객가를 연구한다고 소개했기에 ‘객가’의 어떤 우수성을 이야기 하고 싶었을 것이다.

related
2026.06
타자를 탐색하기: 객가를 찾아서
series
오주영
필드노트
... 대만
2026.05
호기심의 방향: 객가를 향한 지향성의 역사
series
오주영
필드노트
... 대만
2026.07
타자와 접촉하기: 대만, 객가, 조안객가
series
오주영
필드노트
... 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