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의 방향: 객가를 향한 지향성의 역사
객가(客家)에 대한 나의 관심은 전적으로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어떠한 감정은 무언가에 ‘관한’ 것이라는 점에서 무언가를 향하며, 감정은 대상을 향한 지향이나 방향을 수반한다.”(사라 아메드, 2004/2023)라는 사라 아메드의 말에 비추어 본다면, 나의 이러한 궁금함의 근원에는 무언가 그 대상을 향한 지향이 있을 것이다.
성장기인 중학교에서 대학교 졸업 때까지(1991-2000)를 중국에서 보냈고, 대학에서 중국 역사를 전공한 나는 중국에 대해서라면 꽤 다양한 분야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자부했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중국 전문가가 되기로 진로를 정했고 구체적인 실현의 방법으로 대학원에서 중국지역학을 전공하는 길을 택했다. 대학원 1학기에 수강한 “동남아의 화인화교” 과목(2002)에서 처음으로 “객가”란 집단을 알게 되었다. 스키너는 태국의 중국사회를 설명하며 은행, 미곡상, 보석상에서 일하는 조주(潮州)인 , 얼음공장이나 호텔에서 일하는 해남(海南)인 그리고 기계공 혹은 기계상점에서 일하는 광동(廣東)인, 고무 수출업에 종사하는 복건(福建)인 그리고 은 가공과 기자로 일하는 객가 (客家)에 대해서 언급했다(William Skinner, 1957). 조주인, 해남인, 광동인, 복건인은 출신지역을 바탕으로 한 정체성을 담고 있었지만, 객가는 들어본 적이 없는 지명이었다. 중국어의 객(客)은 손님, 혹은 이방인을 뜻하며, 가(家)는 가족, 집을 뜻한다. 태국이라는 타국에 이주한 중국인들은 각자의 고향을 중심으로 향우회를 조직하고, 네트워크를 만들어 특정한 업종을 독점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객가는 ‘이방인, 떠돌이’의 정체성으로 집단을 형성했다. 나의 호기심이 한층 짙어지는 대목이었다. 지속적인 이주와 이민의 과정에서 새로운 거주지의 주인들 혹은 주류집단으로부터 차별과 따돌림을 받았을 그들은 성도 출신 지역도 없이 그저 ‘객가’라고 불리었을 것이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객가라는 집단에 대해 나의 연민과 공감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내가 객가에 대한 주제에 흥미를 느낀 것은, 그들의 본질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나의 경험에 기반하여 그들과 어떠한 "동질성"을 느끼고 다가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중국에서 중학교에 다니기 전, 더 정확히는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4학년에서 6학년 때까지(1988-1990), 우리 가족은 아직 중국에 반환되기 전 홍콩에 2년 거주했다. 당시 홍콩에는 한국국제학교가 있었고, 한국에서 파견된 교사와 현지에서 채용된 교사들이 함께 학교를 꾸려가고 있었다. 홍콩의 다른 학교들처럼 교복을 입고, 집에서 학교까지 통학버스가 있었다는 점, 정규수업으로 영어가 있었던 점을 제외하면 한국의 초등학교와 다를 것이 없었다. 하지만, 외국이라는 특수성과 홍콩에서 유일한 한국국제학교라는 점은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부모 모두의 관계를 끈끈하게 뭉쳐주었다. 학교 밖은 외국이었기에, 학교는 상징적으로 고향과 집을 연상시키는 공간이었다. 학년 별로 하나의 학급만이 존재하고, 학생 수도 적어서 전교생을 합쳐도 100명이 되지 않았던 학교는 함께 사는 작은 마을을 연상시켰다. 우리는 홍콩에 살고 있었지만,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와 선생님 그리고 학부모 등 한국 사람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를 얻고, 어울려 놀고, “작은 한국”을 만들었다.
어린 시절 나의 홍콩 경험은 객가라는 연구대상에 대한 상상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분명 객가들도 타국에서 본인들의 언어와 문화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교육기관을 세우고, 본인들의 네트워크를 발달시켜 나갔으리라. 고향 음식이 그리울 때 그들도 어딘가에 객가 음식점을 찾을 것이고, 김치와 라면 등을 파는 한국 슈퍼마켓처럼 그들도 타국 객지의 어느 모퉁이에 그런 상점이 있겠지. 내 이주 생활에 대한 기억은 객가들도 그랬을 것이라는 짐작을 키워갔다.
토도로프는 아메리카의 정복이라는 책에서 스페인의 아메리카 정복과정을 분석하며, 타자를 인식하고 대하는 유럽인의 태도에 대해 비판했다. 특히 타자에 대한 이해가 빠진 콜럼버스의 방식을 지적했다. 콜럼버스는 아메리카를 “발견”했다고 말하며, 거기에 사는 원주민들을 단지 본인에게 필요한 금, 향신료를 제공하고 기독교를 통해 동화되어야 할 대상으로 여겼다(Tzvetan Todorov, 1982). 어쩌면 나도 콜럼버스의 방식으로 객가를 “발견”하고자 하는건 아닐까? 나는 아직 객가가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 가보지도 않고, 나의 이주 경험으로 그들을 삶을 짐작하며 연구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고국을 떠나 타국에서의 생활이 고향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을 자극했을 것이고 이를 통해 집단은 더욱 강한 응집력이 있을 것이라는 나의 추측을 증명하듯 객가들은 1971년 홍콩에 숭정대하(崇正大廈) 건립을 기념하며 전 세계 객가들의 네트워크인 세계객속간친대회(世界客屬墾親大會)를 조직하였고, 내가 객가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던 2002년에 그들은 제17회 대회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개최했다. 늘 ‘손님’, ‘이방인’으로 떠돌아다니는 이들은 객지에서의 서러움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감정을 토대로 ‘객가’라는 ‘우리’를 만들어 가고 있다. 나는 객가를 아직 만나보지 않았지만, 그들은 이미 나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나의 상상에 기반한 우리의 ‘동질성’에 의해 나는 객가를 연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