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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
키르 요리와 헌혈하기
차스 하마커
필드노트
... 휴스턴 미국

이글에 등장하는 모든 이름은 내가 다루는 사람들의 사생활을 존중하기 위해 가명을 사용했다.

10월의 선선한 어느 아침, 텍사스주 리치먼드에 있는 파슈파티나트 사원(Pashupatinath Mandir)으로 차를 몰고 가던 나는 그날이 평소와 다름없는 예비 현장 연구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이미 사원에서 매달 열리는 아비쉐크(abhishek) 의식과 요가, 아라티(aarati) 의식, 커뮤니티 모임을 위해 한 번 그곳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사원으로 운전하고 가면서 나는 그 위치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휴스턴의 풍부한 코스모폴리타니즘에도 불구하고, 휴스턴 외곽의 시골길을 따라, 방목 중인 롱혼 소들이 흩어져 있는 들판과 악어로 우글거리는 물가로 이어지는 샛길을 따라 가다보면 이 외딴 네팔 힌두 사원을 발견하게 되리라고는 아무도 짐작하지 못할 것 같았다.

도착했을 때의 풍경은 지난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넓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포장된 길을 따라 사원으로 걸어 올라갔다. 리치먼드의 파슈파티나트 만디르는 두 개의 주요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작고 네모난 겨자색 목조 사원으로, 흰색 모서리 장식이 있고 높은 목조 기단 위에 세워져 있다. 이 작은 건물의 남서쪽과 남동쪽 면에는 격자 무늬 창문이 달린 흰색 두짝문이 각각 하나씩 있고, 북동쪽에는 창문 하나가 나 있다. 외벽은 전형적인 서양식 가로 널판 외장재로 마감되었지만, 지붕은 원래의 파슈파티나트 만디르와 카트만두의 다른 사원들의 중층 탑 양식(pagoda)을 모방해 만들어졌다. 지붕의 두 층은 처마 아래에서 나부끼는 작은 붉은 천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맨 위층에는 금속으로 만든 가주르(gajur) 첨탑이 얹혀 있다. 작은 사원 맞은편에 자리한 더 큰 건물은 사원과 커뮤니티 홀을 함께 갖추고 있는데, 커다란 현대식 단층 주택과 소박한 행사장의 중간쯤 되는 외양이다. 얼핏 보면, 정면 박공(gable)에 금색 옴(Om) 문양이 찍혀 있지 않았다면 이 겨자색 건물을 힌두 사원으로 알아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사원 앞에 경사진 지붕과 세 개의 가주르(gajur) 첨탑을 갖춘 장식용 문이 없었다면—맞은편 작은 탑과 같은 네팔적 정서를 공유하는 양식으로 만들어진—이 건물이 네팔 사원임을 알아보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큰 사원
큰 사원
작은 사원
작은 사원

사제는 네팔에서 들여온 링가(linga: 시바신의 상징물) 뒤에 있는 작은 테이블에 홀로 앉아있었다. 내가 인사를 건네자, 그는 아비쉐크 의식를 준비하며 생쌀알을 이리저리 밀어가며 길조의 문양을 만들면서 자신의 옆에 앉으라 권했다. 그리고는 신부는 작은 성냥갑을 이용해 쌀알을 이리저리 밀어내면서 작은 만자문(스와스티카 swastika) 형태를 만들며 나와 가벼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사제는 자신의 자동차를 옮겨야 했고 나에게 디페쉬라는 남자에게 자신의 차키를 전해줄 수 있냐고 부탁했다. 그후 월례모임의 활기가 서서히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지난번 참석했던 아비쉐크 의식과는 다르게, 사람들은 다양한 보건 관련 단체와 업체 현수막을 들고 도착했다. 이번 일요일에 큰 사원의 커뮤니티홀에서 건강 박람회가 열린다는 것이 곧 분명해졌다. 커뮤니티 홀 안에서 사람들은 테이블을 설치하고, 현수막을 걸기 시작했다. 나는 할 수 있는 만큼 도운 뒤, 큰 사원 메인 홀에서 열리는 요가 수업으로 향했다. 요가 수업이 시작하기 전, 누군가 주차장에 들어오는 대형 헌혈 버스를 위해 공간을 만들 수 있도록 내 차를 다시 주차해줄 수 있냐고 부탁했다. 그때서야 이것이 단순한 건강 박람회가 아니라 헌혈 캠페인이기도 하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뉴욕에서 힌두 사원과 불교 사원 근처에 살던 경험으로 나는 이러한 사원들에서 현혈 행사가 꽤 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비록 누구도 나에게 직접 그렇게 말한 적은 없지만, 업과 공덕의 믿음을 지닌 다르마(Dharma) 계열 종교의 성지가 어떻게 피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의 안녕(betterment)을 위해 자신의 피–생명의 원천–를 기증하기에 완벽한 장소가 될 수 있는지 그 연관성을 떠올릴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나는 헌혈 버스를 보았을 때 내 피를 기증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요가 수업이 끝난 후 나는 별다른 목적 없이 사원 경내를 어슬렁거리다가 다시 디페쉬와 마주쳤다. 그는 커뮤니티 홀 뒤편에 있는 사원의 야외 취사장에서 큰 나무 주걱으로 커다란 솥에 담긴 키르(khir, 우유로 만든 쌀 푸딩)를 젓고 있었다. 무엇을 만들고 있냐고 물어보려 했지만, 마침 우유가 끓어 넘치기 시작하면서 그는 내 말을 듣지 못했다. 디페쉬는 우유가 넘치지 않도록 찬물을 붓기 위해 싱크대와 솥 사이를 허둥지둥 오가기 시작했다. 나는 재빨리 취사장으로 들어가 큰 나무 주걱을 들고 넘쳐흐르는 우유를 젓기 시작했다. 함께 힘을 합쳐 디페쉬와 나는 우유를 가라앉힐 수 있었다. 다시 넘치지 않도록 키르를 내가 계속 저어도 괜찮다고 그에게 말했다. 덕분에 그는 넘치는 우유 걱정 없이 다른 재료와 음식들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취사장에 갇혀 지내는 건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적어도 학업 목적 외에도 내 방문에 어떤 의미 있는 목적을 부여해 주었기 때문이다. 취사장에서 일하다 보면 너무 튀지 않으면서 이야기 상대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계속 키르를 젓는 동안, 디페쉬는 이따금 다가와 솥 바닥의 쌀과 우유가 타지 않는지 확인했다. 어떻게 이 많은 양을 요리할 줄 아냐고 묻자, 그는 타멜(Thamel)에서 식당을 운영한 적이 있다고 했다. 이어서 미네소타에서 IT 업계에 종사하다가 결국 휴스턴으로 이주해 지금은 건설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IT를 하다가 지금은 건설 일을 하신다고요?" 내가 물었다.

그가 재료를 준비하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퇴보한 셈이죠.” 그가 웃었다. 그리고는 예전 IT 업무보다 건축업을 더 좋아한다고, 그 일의 활동적인 면을 즐긴다고 말했다. 디페쉬와 내가 공동체를 위해 여러 음식을 대량으로 준비하는 동안, 사람들은 잠시 들려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곤 다시 커뮤니티 홀로 돌아갔다. 키르가 완성되자, 우리는 커다란 냄비에 채소 카레를, 큰 볼에 알루코 아차르(aaluko achaar, 감자 피클)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요리를 하던 어느 순간, 디페쉬는 아비쉐크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나를 재촉하며 커뮤니티 홀을 가로질러, 큰 사원 정면을 나와 작은 탑 양식 사원 쪽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디페쉬는 나를 사람들이 붐비는 작은 탑 안으로 이끌었고 그곳에서 그는 누군가가 나에게 링가(linga)에 부을 수 있는 우유로 가득한 작은 황동 카루와(karuwaa)를 건네주게 했다. 공양을 끝낸 뒤, 디페쉬와 나는 아라티(aarati) 의식이 끝나기 전에 요리를 완성할 수 있도록 서둘러 취사실로 돌아갔다.

이후 취사장에서의 역할을 끝내고 아라티가 열리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나는 큰 사원 본당에 모인 신도들과 함께하며 사원과 연계된 네팔인 협회의 회장을 만났다. 그와 악수를 나누고 사원의 중앙 천장에 매달린 종 옆에 그와 나란히 섰다. 아라티는 유튜브에서 찾은 “옴 자야 자그디시 하레(Om Jai Jagdish Hare, 힌두교 찬가)”의 연주로 시작되었다. 벽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부드러운 플루트 선율이 흘러나오며 공간을 고요함으로 채웠다. 노래가 북과 현악기의 합주로 이어지자 회장이 위에 달린 종을 울리기 시작했고, 이어서 사제가 헤드셋 마이크에 대고 노래했다. “오, 온 세상의 주님이신 자가디쉬(신)이여, 당신께 영광을 (om jaya Jagadish hare, prabhu jaya Jagadish hare)...” 다른 사람들은 무르티(murtis) 앞에 불을 바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내가 앞으로 나가 불을 올리는 의식에 참여하도록 등떠밀었다. 나는 이전 방문 때 한 번 해본 적이 있었지만, 불꽃을 담은 쟁반을 시계 방향으로 돌리는 것 외에 의례를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여전히 자신이 없어 어색함을 느꼈다. 그래도 차례를 마친 뒤 군중 뒤쪽으로 돌아왔다. 찬가가 마무리될 무렵, 방 건너편을 바라보니 디페쉬가 옆문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다 나를 발견하고는 멀리서 불 공양을 드렸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아라티가 끝나고 음식이 차려지자, 나는 밖에서 점심을 먹을 자리를 찾아 둘러보았다. 한 부부 옆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는 서로 어디 출신인지, 휴스턴에 온 지 얼마나 됐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같은 일상적인 질문들을 주고받았다. 대화가 마무리될 무렵, 부부는 헌혈할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아마도요"라고 답했지만, 사실 처음에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부부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가치 있는 일이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내 머릿속에서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이 공동체의 활동에 기꺼이 참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나중에 본격적인 현장연구를 위해 돌아왔을 때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것. 몇 년 전에 헌혈을 한 적이 있었지만, 그 이후로 용기를 잃어버렸고 가장 최근에 피를 뽑을 때는 거의 기절할 뻔했다. 긴장을 숨긴 채 접수 명단 앞으로 걸어갔다. 이름을 적었지만, 조금 나중에 차례를 가져도 되냐고 물었다. 헌혈을 위해 마음의 준비를 하며 디저트를 가지러 갔다. 과자를 먹으며 생각했다. '오늘 꼭 헌혈을 해야 해. 안 그러면 참여 관찰을 하고 공동체 내에서 친밀감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거야.' 마침내, 긴장되었지만 앞으로 나아가기로 결심했다. 접수 부스로 다시 걸어가자, 팔에 파란색 코반(Coban) 붕대를 감은 협회 회장이 또 보였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분이 했다면, 나도 할 수 있어.'

헌혈 버스로 향하면서도 여전히 준비가 안 된 느낌이었다. 그런데 차량으로 막 다가가는 순간, 문 하나가 열리는 것이 보였다. 팔에 파란색 코반 붕대를 감은 디페쉬가 걸어 나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방금 피를 한 파인트나 뽑지 않은 것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 순간 용기가 솟구쳤다. 버스 안으로 들어서자 또 다른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가네쉬(Ganesh) 박사, 이전에 휴스턴 대학교에서 열린 다른 네팔 행사에서 만난 또 한 명의 공동체 구성원이었다. 그는 헌혈용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었고, 반쯤 찬 혈액 백이 계속 채워지고 있었다. 가네쉬 박사가 고개를 돌려 미소로 인사하며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다. 바로 이 순간, 나는 깨닫기 시작했다. 순수한 자선과는 거리가 있었던 나의 동기는 헌혈을 고려하게 만드는 데까지만 작용했다는 것을. 그러나 실제로 헌혈을 실행할 용기를 불어넣어 준 것은, 주변 사람들과의 더 진실한 연결에서 비롯되었다. 함께 시간을 보낸 사람들, 우유가 넘치지 않도록 함께 젓는 단순한 일로 교감을 나눈 디페쉬 같은 사람들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