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 EN
2026.04
해녀, 다이버, 젊은 여자
김세연
필드노트
... 제주도 한국

물질(자맥질)은 해녀(잠녀)가 맨몸으로 바다속에 잠수해 물건(해산물)을 채집하는 어로 방식을 말한다. 해녀 고유의 기술이자 지식인 이 물질은 신체적 경험을 통해서만 체득할 수 있다. 60년 동안 해녀로 살아온 한 삼춘1은 ‘그냥’ 바다에 들어가 헤엄치며 시작했다고 알려주셨다. 그렇다면 그냥 아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암묵적 지식과 명시적 지식의 문제를 고찰한 폴라니는 신체로부터 형성되는 앎의 착화 과정2에 주목한다. 그는 뇌의 운동과 몸의 운동의 위계를 재정의하며, 언어와 규칙으로 환원하기 어려운 영역을 탐구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냥’적인 태도 역시 신체를 매개로 알게 되는 암묵적 지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야기와 신체로 이어지는 해녀의 지식은 언어의 울타리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실천이다. 이 실천은 물이라는 물질을 지속적으로 마주하면서 쓸리고, 다치고, 고비를 넘기며 축적된다. 몸에 녹아있는 물질 기술은 근대적 교육인 학교를 통해 공식적인 서사로 개편되어 뚜렷한 형태를 갖게 되었다. 나는 2022년도에 수행한 현지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해녀의 앎이 어떻게 명시적인 지식으로 번역되어 젊은 여성들에게 전승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해녀체험하는 나
해녀체험하는 나

해녀

제주에서는 해녀의 생애주기에 따라 그들의 문화와 가치가 소멸해간다는 우려가 만연했다. 그에 따라 약 2011년부터 제주해녀문화의 유산화 계획이 추진되면서 16년도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그리고 다음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해녀문화는 물질 기술을 포함해 불턱, 테왁, 지드림 등 해녀의 삶 전반에서 형성되는 문화적 실천을 포괄한다. 마을에서는 고령화 문제 뿐만 아니라 승계받을 자손과 마을의 청년이 육지로 이민을 가며 해녀의 맥을 이을 여성이 없어지는 상황 또한 커다란 걸림돌로 받아들였다. 해녀학교는 이렇게 사라져간다는 감각을 문화 공인을 통해 완화하려는 제도적 움직임에서 기획된 해녀 육성 프로그램이다.
소녀는 이제껏 자신의 할망에게, 어멍에게, 언니에게 최소한의 확인과 함께 바다에 던져져 어깨너머 그리고 자립적으로 물질을 터득하며 해녀가 되었다3. 이러한 학습 방식은 문자 중심의 교과 체계로 풀어내기에 여러움이 있다. 내가 삼춘들3한테 어떻게 물질하는지 물어볼 때도, 혹은 알려진 해녀문화에 대해 질문할 때도 곤란해하거나 심드렁한 태도로 그냥, 어쩌다 등의 말로 설명을 뭉개는 경우가 많았다. 해녀학교 관계자는 삼춘들이 물질을 입으로 가르치는 일을 힘들어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어서 학교는 텍스트로의 재현을 위해 다이버의 언어를 빌리기로 한다. 수압에 대처하는 법, 균형잡힌 자세, 안정적인 호흡을 위한 물리법칙 등 과학·생물학적 근거를 토대로 구축된 다이버 이론은 지역적으로 전승된 지식을 읽을 수 있는 시각 자료로 변환시키기 위한 하나의 도구가 되었다. 그렇게 다이빙 개념은 해녀의 물질 기술을 가시적인 지식으로 재구성하는 일에 가담하게 된다. 이제 해녀의 몸지식은 과학적 지식과 나란히 배치된다.

다이버

A해녀학교는 1년에 한 번, 3월에만 신입생을 모집한다. 바다의 압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거나 낙오되는 학생이 있어, 정원보다 많은 수를 뽑는다. 면접을 통과한 학생은 5~7월 주말마다 86시간의 수업을 듣는데, 이 수업은 오전 이론 강의와 오후 실습으로 구성된다(후반부는 오전/오후 모두 실습). 졸업생 일부는 가을에 제주 지역의 어촌계에서 2개월 간의 인턴 과정4을 수행하며 해녀의 삶을 예비할 수 있다. 해녀학교는 물질 방법과 함께 어촌계 더 좁게는 잠수회(해녀회) 규율, 수협 가입 절차, 바다 환경, 해녀의 역사 등 전반적인 해녀문화에 대해 가르친다. 학교의 강사진으로는 교수, 수협 관계자, 해녀 그리고 (스킨/프리)다이빙 전문가5가 있다. 해녀양성교재에는 해녀의 물질과 다이버의 다이빙 기술이 병치되어 제시된다. 수업 첫시간에는 다이빙 전문가에게 잠수이론을 배우고, 4일차 실습부터 조를 나눠 해녀삼춘에게 1:1 물질 지도를 받는다. 나머지 인원은 다이버 강사의 안전 수칙에 따라 팀별 연습을 진행한다.
초보자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바로 가라앉는 법이다. 허리에 연철을 차면 보다 하강이 수월해지지만, 위급 상황에 대처하기 어려워 바른 다이빙 자세를 연마해야 한다6. 이 바른 입수 자세는 프리다이빙의 ‘덕다이빙(duck diving)’ 기술로, 머리부터 입수하여 90도의 각도로 내려가는 자세를 의미한다. 한 인턴해녀는 해녀와 다이버의 입수 차이에 대해 알려주었다. 예컨대 해녀삼춘은 귓병을 예방하기 위해 귀가 적응할 때까지 천천히 내려가라 권하지만, 다이버는 체력 효율을 고려해 빠르고 수직적인 하강을 강조한다. 수심이 깊어지면 그에 따라 수압 역시 강해져 귀에 통증이 발생하는데, 이때 ‘이퀄라이징(equalizing)’ 기술을 사용해 귀로 공기를 보내면 압력을 조절할 수 있다. 이를 잘 익히면 더 깊은 수심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반면, 해녀는 단지 침을 삼키며 깊숙이 들어간다. 어느날, 자기 몸이 갈 수 있는 만큼 내려가보면 자신의 최고점이자 한계를 만나게 된다. 그 깊이까지가 평생의 바다인 것이다. 이는 물질의 지형적 범위가 개인의 신체 조건에 따라 결정되며, 물질 지식이 구체적인 몸을 통해 축적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해녀는 자신의 몸이 허락하는 내에서 작업하며 각자의 움직임으로 바다를 익혀간다. 또한 해녀는 언니-동생처럼 벗으로서 관계하고, 서로를 지키고 감시하는 방식으로 바다의 위험을 관리한다. 이러한 물질 연대는 다이빙이나 수영 시 두사람이 짝을 이루어 움직이는 ‘버디시스템(buddy system)’과 유사한 형태로 교육된다. 이렇게 해녀학교에서는 해녀의 작업 과정을 프리, 스킨, 스쿠버 다이빙의 여러 기술로 치환해 교육한다.

해녀양성교재 Ⓒ김세연
해녀양성교재 Ⓒ김세연

젊은 여자

직업 전문 해녀 육성을 목표하는 A해녀학교에는 여성만이 입학할 수 있다. 체험식의 이벤트가 아닌 실제 근무가 가능한 직업 해녀로 키우기 위해 전문적인 강습과 인턴쉽 제도를 구축했다. 이러한 시도는 또 다른 가능성으로 이어졌다. 마을의 토박이, 궨당, 해녀의 친족만이 해녀가 되는 폐쇄적인 구조에서 연고가 없는 외부 여성들도 노력한다면 어촌계원이자 해녀가 될 수 있는 구조로 변화한 것이다. 학생의 대부분은 육지에서 내려오거나, 프리/스쿠버 다이버 자격증이 있거나, 물에 익숙한 젊은(20~50대) 여성이다. (이 글에서 토박이와 외지인, 해녀와 다이버의 관계를 다루기에는 너무나도 복잡하다) 이들은 곧 원한다면(버틴다면) 새내기·애기해녀로 살아갈 수 있다. 예상치못한 동침은 서로를 변화시킨다.
합법적으로 해산물을 채집하고 싶은 다이빙 경력자, 조금 더 특별한 삶을 원하는 열정적인 여성들은 하나같이 물을 사랑해 해녀가 되고자 한다. 하지만 이는 한 바다에서 수십년 동안 몸을 맞춰온 삼춘의 방식과는 다르다. 다양한 수중 경험 위에 덧씌워진 해녀적인 경험은 기존과는 다른 물질을 만들어낸다. 한 번은 졸업생이 모인 술자리에 갔는데, 물질을 더 잘하기 위해 그리고 오랫동안 바다를 누비기 위해 다이버의 용어로 조언을 구하는 것을 들었다. 몇 해녀삼춘은 자신의 혹사된 몸을 생각하며, 더 건강한 물질을 가능케 하는 다이버의 말을 따르라하지만, 다른 삼춘은 정석대로 침 삼키는 방법을 요구한다. 상이한 기준이 공존하는 가운데 ‘진짜’, ‘전통적인’ 해녀를 계승하기 위해 힘들어도 왕눈을 착용하려는 여성과 몸을 아끼며 가능한 만큼 해녀를 수행하려는 여성 모두 해녀가 된다. 이퀄라이징이란 기술을 모른 채, 고통을 참으며 몸을 억지로 바다에 맞췄던 이전 과정은 인터넷 검색과 다이빙 훈련으로 자신의 몸을 조율하는 과정으로 변하고 있다.

해녀학교 수업 발표 자료 일부로, 왼쪽이 해녀가 착용하는 왕눈이다. Ⓒ김세연
해녀학교 수업 발표 자료 일부로, 왼쪽이 해녀가 착용하는 왕눈이다. Ⓒ김세연

해녀학교는 해녀-되기 프로젝트를 위해 해녀의 삶을 여러 지침으로 지도화한다. 젊은 여성들은 이 지침을 따라하며, 전통적인 방식과는 다르게 해녀가 되어가고 있다. 잠수 기술은 다이버의 기술로 재조직되고, 외지인인 다이버는 어촌계 영역으로 편입되고, 친족 중심의 관계는 선후배 기수제 관계로 재편된다. 어장의 환경, 바다의 흐름, 날씨와 파도 읽기 등 바다를 배우며 얻는 앎 역시 신체를 통해 자연스럽게 체득되기보다 인지적 이해가 먼저 이루어진 뒤 실제와 맞춰보는 방식으로 익혀진다. 이로써 ‘그냥’ 겪게 되는 경험은 배우고, 모방해야 하는 지식으로 바뀐다. 이러한 선형적인 교육의 순서는 해녀의 실천을 체계적인 ‘문화’로 수행하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이 변환은 해녀문화를 단순히 보존하는 것을 넘어, 바다, 몸 그리고 관계 자체를 다시 배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해녀와 다이버의 접점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지식은, 전통을 계승하는 동시에 중첩된 형태로 다른 해녀를 만들어내고 있다.

*본 글은 나의 석사논문(2024)을 바탕으로 재구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