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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
이상향과 전장
권혜윤
필드노트
... 지리산 한국

1 날짜를 정확히 기억할 수 없는 어느 날, 나는 노트북으로 현지조사지의 디지털 아카이브를 뒤적이고 있었다. 구글 검색 결과에 제목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상향과 전장, 지리산 의신마을의 두 얼굴.” 나는 링크를 클릭하고 읽기 시작했다. “의신마을은 역사적으로 청학동의 이상향이면서도 전란의 땅이었다는 아이러니를 가지고 있다. [...] 의신마을 주민들 사이에 전승되는 믿음 중에 하나로 ‘전란의 마지막 끝맺음은 의신마을에서 한다’는 생각이 있다. 그렇지만 마을 주민들은 정작 전란의 사상자가 나지 않은 것은 이곳이 청학동이라는 이상향이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나는 마을과 이를 품은 광활한 산줄기를 힐끗 바라보았다. 갑작스레, 그 경관이 낯설게 보였다.

* * *

지리산의 경로당에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 나는 국립공원의 보존 정책에 관하여 물었다. 답답하게도 대화는 자꾸만 전쟁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난 이번에는 그들이 대화를 이끌도록 내버려두기로 결심했고 그들이 나누고픈 이야기를 경청하기로 했다. 네 명의 할머니는 무관심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헐렁한 꽃무늬 몸뻬 바지는 무릎 아래로 늘어져 낡은 양피지마냥 얼룩덜룩한 종아리를 드러냈다. 햇빛에 그을린, 쪼글쪼글한 손은 무심히 종아리를 쓸어 내리곤 했다. 그들은 마치 내가 없는 것처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하이톤의 할머니는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자신이 혼란스러운 전쟁통에서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솥에서 밥을 먹는 “어떤 남자”들을 마주친 이야기를, 강한 사투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어마이는 밭에 가서 없고. 밥 푸는 거 쳐다보고 섰응께 ‘꼬마야 와서 밥무라’ 그래. 그때만 해도 철떼이가 없어서, ‘저런 것들이 밥을 먹는 게 더러워서 어케 먹어’라고 그리 말이 나온기라 쬐깐한 게. [...] 내 철도 없는 거, 남자들이 시꺼멓게 모자 쓰고 꼭 거지맹키로 하고 다니께 그리 생각했지. ‘저 썅놈의 가시나가!’”

할머니들은 웃음꽃을 피웠다.

혼란스러웠던 나는 그 남자들이 누구냐고 물었다.

우리는 역사 속을 헤매었다. 시간을 건너뛰고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하면서. 할머니들의 이야기 조각들은 방향을 끊임없이 바꾸며 지속되는 대화 속에서 기워졌다. 일본군에서 빨치산으로, 군인으로, 경찰로.

독한 일본인들. 독한 빨갱이들. 독한 순경들.

한 할머니가 몸을 떨며 고개를 저었다. 할머니는 가족 중 한 명이 '반란군'을 따라 북으로 도망쳤다는 이유로, 경찰이 논 근처에서 일가족을 몰살하고 그 광경을 마을 사람들에게 강제로 지켜보게 했던 일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들은 그 가족의 집에 불을 질렀다. 낮에는 군경에게, 밤에는 빨치산에게 시달려야 했다. 여러 마을 주민들이 죽었다. 이웃 마을에서는 더 많이 죽었다.

그 시절 숲은 지금과 전혀 달랐다. 총성이 숲에 울려 퍼졌고, 국군의 시체를 태우는 불길로 하늘은 벌겋게 물들었다. 빨치산의 시신은 썩도록 방치되어 숲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약초를 캐다가 종종 발견되는 두개골은 바구니로 쓰이기도 했다.

“그땐 그 뼐따구를 먹고 그랬는가 사람 죽은 걸 먹고 그래선가 나물도 좋아!” 할머니들이 또 한 번 웃음을 터뜨렸다. 다시금, 나는 혼란스러웠다.

나는 푸른 숲으로 칠해진 창문을 바라보았다. 무성하고 활기찬 숲은 더는 화전의 흔적이나 시신으로 얼룩져 있지 않았다. 이 아름다운 숲을 보고 할머니들을 포함한 다른 마을 주민들이 불평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설명했다. 국립공원공단이 가꾼 울창한 숲이 작은 생명들–약초, 버섯, 들꽃–을 위협한다고, 거대한 존재들의 그늘 속에서 시들어가게 만든다고.

대화가 잠시 멈추었다. 어쩌면 열띤 수다에 지친 걸지도 모른다. 오래된 선풍기가 달달 돌아가는 소리, 이름 모를 텔레비전 쇼 소리. 나는 어느새 멍하니 텔레비전을 쳐다보고 있었다. 얼마 후에 우리는 마을에 전기와 연료가 들어오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산에서 어떤 작물을 키웠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긴 인터뷰가 끝나고 나는 산 아래에서 사온 쌀과자를 꺼냈다. 할머니들은 가난한 학생이 무얼 가져오냐며 나무랐지만, 내 작은 선물을 받고 미소를 머금었다.

떠나려던 찰나, 내 숙소 집주인의 어머니인 할머니가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우리가 하는 말 이해했어? 젊은 사람들은 우리 여 시골 사람들 말을 많이 몬 알아먹어서 그렇지.”

표면적으로 할머니는 전라도와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강한 사투리를 알아들을 수 있었냐고 물은 것이지만, 나는 더 많은 이야기가 있음을 알았다. 나는 그저 미소 지어 보이고 고개를 끄덕였다.